허공의 지문을 새의 눈으로 읽는다
한때 비바람과의 공모로
목까지 채운 내 탐욕의 단추
여여한 구름 앞에서
눈이 먼 채 비겁해졌다
고도 높은 하늘에 자작나무를 세워
무지개를 걸어볼까
당신이 보낸 전령, 안개의 눈에
비문으로 새겨 넣을 구름부족의 가계도는
두드린다고 다 열리는 문이 아니다
누군가 호명해주어야 열린는 등용문
은유의 레일 위에서
화려한 수사의 질척거림으로
그대 영혼 훔치겠다고 밀고 당기는 일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한다
파란 많은 몽상가의 생에 끼어들어
위태로운 풍문으로 흩어질 수 없어
오리무중 구름의 배후에
나, 이제 양 떼를 풀어 놓아야겠다
새도 우울의 습기로 번져서
생각이 날아다니는 섬
안개도 덩달아 구름부족의 일가가 된다
장미가시를 건너 밟던 여자
마른 못 둘레를 서성인다
어제는 다정과 냉정 사이
고쳐 맨 신발 끈이 풀려
진흙 구덩이에 빠져
얼마나 갈팡질팡했었나
신을 벗어도
못물 건너지 못하는 그녀
소지 닮은 꽆잎에 시를 쓰겠다고
만월에 비춰본다
온몸이 젖는 줄 모르고
물푸레 나뭇가지 꺾어
가랑비를 부른다
시름시름 목이 마른 뒤에야
하늘 문을 여는 빗장
잎 돋는 목요일로 건너간다
출구를 찾지 못한 물은
내 안의 살아있음의 증거들
귀를 잠그고 눈 닫아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방울의 집합체
부서지는 물의 정령에 놀라
절수 밸브에 발을 올리면
어느 강의 중심에서
흘러와 수평을 조율하는
물의 숨결
나를 떠나
어디론가 달려가는 물
흐름을 찾아가는 물길이
아슬아슬 수위를 높인다 해도
함부로는
범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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