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보

가시나무 뗏목 / 심수자 시집

 


1부 물 밖의 길

 

가시나무 뗏목

 

동에서 시작한 생이 서로 기우는 시간

후회들을 불 지펴 강물에 던진다

 

노을이 든 채찍은 달아날 틈도 주지 않는다

 

나를 노예처럼 부리던 옆에 선 나무는 묵묵부답

나는 콧김이 뜨거워진다

 

동에서 시작한 오체투지, 지평선 닿으면

폐허에서도 부활을 만날 수 있다기에

따라오는 바람의 추임새에도 나는 사슬에서 풀려나는

강물이고 싶었다

 

말꼬리 구름에 올라탄 슬픔은

귓속 성마른 소리로 장단을 들려주지만

강물 앞에 이르러서도 나룻배를 만나지 못해

노간주나무를 베어다가 뗏목을 엮는다

 

먹먹한 가슴에 손을 얹고

해그림자 따라가는 수달의 눈빛이 사뭇 그립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나이테에서

패자로 남고 싶지 않는 나는

피 흘리며 꿇었던 무릎, 조용히 일으켜 세운다

 


 

고요 속으로 들다

 

발끝이 닿고자 하는 길은 절해고도

어느 날 당신이 등을 보이면

갯바위에 붙어사는 따개비처럼

나는 거주지를 옮겨갈 거야

 

돌아올 길 흔적 남기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길 열리는 월등도쯤으로 갈 거야

 

돌아올 길 흔적 남기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길 열리는 월등도쯤으로 갈 거야

지워질 길인 걸 알면서도

오도카니 앉아 팽팽해진 슬픔에 부표를 띄울 거야

 

돌아가지 않겠다는 어떤 표식이라고나 해둘까

길은 길이 아님을 알기에 난간에 마침표를 찍어야 해

 

열려있던 바닷길이 밀물에 닫히면

신었던 신발은 벗어던지고

풀어헤친 머리로 떠나는 파도에게

나비 모양 내 머리핀을 꽂아줄 거야

 


 


, 그물이 되다

 


회약목에 그물처럼 짜인 벌레집에는

얽히고설키며 걸어온 길들이 모여 있다

 

탈피를 꿈꾸며 겨우내 웅크린 벌레

 

나 기껏 그물망에 가두어지려고

저 많은 길들을 걸어왔던 것인가

 

수심을 자로 잴 수 없는 부전나비 애벌레를

꽁꽁 묶어두고 나, 이쯤에서

또 다른 세계로의 환승을 꿈꾼다

 

결국 죽음이란 것도

걸어온 길 풀어 힘차던 날개를 묶는 일

 

그리고 침묵의 굴레에 갇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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