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보

가시나무 뗏목 / 심수자 시집


2부 초롱꽃 종소리


안개꽃 식탁




안개꽃 마른 다발 속에 어머니 앉아계신다


신작로 터덜터덜

시오리는 걸어야 집에 닿던 아이

상급생 집으로 돌아간 학교 앞에서

뙤약볕 속 벌겋게 단 얼굴로 기다린 엄마


엄마를 태운 트럭은 무심히도 지나가 버렸다


엄마를 놓친 길은 언제나 흙먼지 안개 속


아이가 엄마가 된 후에는

안개가 가둔 꽃다발을 거꾸로 걸어두고

아이는 천천히 엄마를 말린다


떠났던 트럭이 데리고 올 어머니는

언젠가 내 손을 잡아당겨 트럭에 태울 테지만

생은 자주 덜컹거렸다


말라가는 꽃을 툴툴 걷어차듯

오늘도 눈앞에 걸린 안개꽃 바라보며

한 숟갈 입안에 떠 넣은 밥알을

꼭꼭 오래도록 씹는다




완곡에 이르다



어깨 처진 은행나무, 가지 떠받치고도

표정 일그러뜨리지 않는 버팀목이 적천사에 있다


둥둥 떠다녔을 당신의 부력을 본다

몸속 깊이 스며든 고독으로 보아 소금쟁이 같다


무게의 중심은 늘 버팀목 쪽으로 향한 나무

내가 당신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동안

심장소리에 귀를 댄다는 것만으로 하루가 즐겁다


어둠 속 별빛 살라 먹은

밀쳐둘 수 없는 내 몸에서 버섯꽃 촘촘히 핀다 해도

완곡에 이른 당신이 있어 좋았다


불 다 끈 캄캄한 밤, 숨소리만으로도

나는 적천에 이르렀음을 안다


당신의 가려운 곳도 긁을 줄 안다




죄와 벌



이집 저집 꽃들, 산마을까지 오느라

할딱거린다


봄은 연애의 마법사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꽃들의 속옷을 가볍게 벗겨낸다


현란의 꽃잎 일러 누구는

열매 맺기 위한 몸짓이라 말하지만

꽃에겐 겨울 내내 감추었던 속살에

햇볕 들어앉히는 것


벌 나비 한곳에 머물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아는 꽃은

속살 깊이 문신 새겨주고 떠나는 그들에게

꽃가루 가득 안겨주는 화대


이산 저산 날아갈 벌과 나비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이더니

떠나고 남는 자리에

풋풋하게 매다는 열매들


일찍 불 꺼지는 순서대로

봄날 산마을 나무의 어깨는 

차츰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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